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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없음’ 상태가 불러오는 새로운 세무 리스크와 규제의 공백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물리적 근무지의 개념을 무너뜨렸고, 그 결과 ‘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삶의 방식이 탄생했다. 디지털 노마드는 고정된 주거지 없이 세계 곳곳을 이동하며 일을 하는 형태로, 많은 이들이 온라인 기반의 프리랜서 업무, 리모트 비즈니스, 또는 패시브 인컴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은 표면적으로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제 조세 체계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로 간주된다. 특히 디지털 노마드가 자국을 떠나 ‘주거지 없음(No Fixed Address)’ 상태로 생활하게 되면, 세법상 ‘세금 거주자(Tax Residency)’ 판정이 모호해지며, 이에 따라 글로벌 과세 의무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어떤 국가는 이들을 자국민으로서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려 하고, 또 다른 국가는 이들을 과세 범위에서 배제해 버리는 식이다. 따라서 디지털 노마드의 '주소 없음' 상태는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세금 위험, 금융 보고 의무, 이중과세 리스크 등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는 법적 구조 변화로 이어진다.


세법상 거주자 판정 기준과 ‘주소 없음’ 상태의 모순

세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 중 하나는 ‘세금 거주자’ 여부다. 대부분의 국가는 세법상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구분하며, 이 판정에 따라 과세 범위, 신고 의무, 소득의 적용 방식 등이 전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연간 183일 이상 거주 또는 주된 생활 기반이 해당 국가에 존재하는 경우, 세금 거주자로 판정된다. 그러나 디지털 노마드는 수개월 단위로 국가를 이동하며 체류하기 때문에 어느 국가에도 장기 거주하지 않거나, 주된 생활 근거지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많은 노마드들이 스스로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며 납세 의무가 없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법은 단순한 ‘체류 일수’ 외에도 가족 동반 여부, 금융 활동지, 주요 수입의 발생지, 자산의 위치 등을 고려하여 거주자를 판정한다. 즉, 주소가 없더라도 어느 국가에서는 충분히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일부 국가는 ‘탈출 규정(Exit Tax Rule)’ 또는 ‘세금 시민권(Tax Citizenship)’ 개념을 도입하여, 자국민이 해외로 나가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계속 세금 신고 및 납부 의무를 유지하게 만든다.

디지털 노마드가 ‘주소 없음’ 상태로 다수 국가를 이동하며 수익을 창출하게 되면, 이 소득이 어느 국가의 과세 대상인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한 디지털 노마드가 한국 국적을 가진 채로 동남아 여러 국가를 2~3개월씩 순회하며 유튜브 광고 수익이나 온라인 강의 수익을 얻고 있다면, 이 수익은 과연 어느 나라에서 과세 대상일까? 한국은 국적자에게 ‘세계 소득 과세’를 적용하므로, 이 수익이 해외에서 발생했더라도 세금 신고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동남아 일부 국가는 일정 체류일 이하인 외국인의 소득에 대해 과세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마드는 ‘이중과세 위험’과 동시에 ‘무과세 상태’라는 상반된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이러한 조세 회색지대를 점점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OECD의 CRS(Common Reporting Standard) 제도는 각국의 금융기관이 해외 거주자의 금융 정보를 해당 국적국 또는 거주국에 자동으로 보고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금융 거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으며, 과거처럼 단순히 주소가 없다고 해서 세금을 회피하거나 비신고로 남겨두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의 '주거지 없음(no fixed address)' 상태가 세법에 미치는 영향


디지털 노마드의 세무 리스크: 고의가 아니더라도 발생하는 불이익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나는 주소도 없고, 어느 나라에도 오래 머물지 않으니 세금 신고 의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무 당국은 이러한 상황을 단순히 수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국외에 183일 이상 체류한 경우 비거주자로 전환될 수 있지만, 가족이 국내에 있거나 주요 자산이 한국에 존재한다면 계속해서 세금 거주자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런 경우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종합소득세 신고 의무가 발생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가산세 및 추징세가 부과될 수 있다. 특히 CRS에 의해 해외 은행 계좌 정보, 투자 수익 정보, 법인 명의 계좌 등이 한국 세무 당국에 통보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신고 누락이나 오해에 의해서도 세무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또한 애드센스나 각종 디지털 플랫폼은 계좌 명의자와 콘텐츠 소유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계정 정지나 지급 보류 등의 불이익을 가할 수 있으며, 이는 수익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주소 없음’ 상태가 편리해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리한 구조일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가 ‘주소 없음’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세무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세금 거주지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금 부담이 적고 디지털 노마드 친화적인 정책을 운용하는 국가(예: 조지아, 포르투갈, 파나마 등)에 세금 거주지 기반을 마련하고, 현지에서 일정한 주소지와 은행 계좌, 세무 등록 등을 확보함으로써 명확한 과세 구조를 구성하는 것이다. 또한 다수 국가에 체류하는 경우라도, 체류 기간, 지출 내용, 수입 발생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중과세방지협정(DTA)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이중과세를 피하는 방법도 있다. 세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출국 신고, 비거주자 판정, 외국 납부세액 공제, 금융정보 보고 의무 등을 사전에 검토하면 예상치 못한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다. ‘주소 없음’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 자유의 대가가 불투명한 세무 리스크가 되어선 안 된다. 디지털 시대의 개인은 자유로운 만큼, 스스로의 법적 구조를 명확히 세우고 합리적인 조세 전략을 세울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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