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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와 무비자 체류의 현실: 합법과 세법의 충돌


디지털 노마드는 온라인 기반의 노동으로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생활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전통적인 국가 중심의 조세 체계와 근본적인 충돌을 일으킨다. 많은 국가들은 일정 기간의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고 있으나, 그 전제는 '관광 목적'이며, 수익 창출 활동은 금지된다.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는 체류 국가 내에서 실제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해당 국가에서 '사업 활동' 또는 '근로소득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국적의 디지털 노마드가 인도네시아에서 60일 무비자 체류 중 온라인 코칭 비즈니스를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외화를 벌어들이며 현지 자원(인터넷, 인프라 등)을 이용하고 있고, 경제적 활동은 자국 외부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해당 활동이 자국 내에서 수행되고 있으므로 세금 부과의 여지가 생긴다. 이처럼 무비자 체류와 수익 창출 사이에는 법적 회색지대가 존재하며,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이 부분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세법상 '소득 발생지'와 고정사업장의 정의: 실무적 분쟁의 핵심


디지털 노마드가 과세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소득이 어디서 발생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국제 세법에서는 ‘소득의 발생지(source of income)’와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의 개념이 중심이 된다. 일반적으로, 소득 발생지는 업무 수행이 이루어진 물리적 장소, 또는 클라이언트의 위치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디지털 노마드가 로컬 고객 없이 단지 해외 클라이언트와 일한다고 해도, 체류 국가가 실제 업무 수행이 이루어진 장소라면 해당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고정사업장의 여부 또한 매우 중요하다. OECD 모델 조세조약에 따르면, 사무실, 지점, 공장 등이 고정사업장으로 인정되며, 이 경우 체류 국가에 과세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고정사업장(digital PE)’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물리적 공간 없이도 장기적·반복적으로 수익 창출 활동이 이루어질 경우 고정사업장으로 인정하자는 취지다. 예컨대 디지털 노마드가 한 도시에서 3개월간 지속적으로 현지 와이파이를 사용해 일하고, 고정된 숙소에서 근무한 사실이 입증되면, 그 자체로 고정사업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개념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지만, 실제 세무 조사에서는 이런 논리가 적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무비자 체류 국가에서 디지털 노마드 활동이 세금에 미치는 영향


세법상 거주자 판정 기준과 반복 체류의 과세 리스크


무비자 체류는 일반적으로 단기적인 방문을 전제로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의 경우 특정 국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거나 장기간 머무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세법상 거주자(Tax Resident)’이다. 세법상 거주자는 일반적으로 연 183일 이상 체류한 사람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체류일 수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국가도 많다.

포르투갈, 스페인,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는 183일 미만의 체류자라도 ▲ 경제활동의 지속성 ▲ 주거지 보유 여부 ▲ 가족 동반 ▲ 소득의 반복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세법상 거주자로 판단한다. 만약 특정 국가에서 거주자로 판정되면, 해당 국가의 전 세계 소득(global income)에 대해 과세 대상이 되며, 이는 매우 심각한 세무 리스크를 유발한다.

특히 무비자로 체류하면서 매년 동일한 도시에서 같은 숙소를 이용하고, 지역 네트워크에 가입하며, 현지 소비까지 일정하게 발생하는 경우, 조세 당국은 이를 '생활 근거지의 형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체류 일수는 짧더라도, 체류의 ‘실질성’이 인정되면 과세 대상이 된다. 실제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은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세무 감시를 강화하고 있으며, 해외 송금 내용, 체류 기록, 인터넷 접속 위치(IP주소)까지 수집하여 과세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국가별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과세 정책 변화와 무비자 정책의 재구성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노마드의 확산은 각국 세무 정책의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새로운 과세체계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세법을 재정비하여 디지털 기반 근로에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은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발급하며 일정 소득에 대해 고정 세율을 적용하고, 태국은 ‘LTR(Long-Term Resident)’ 프로그램을 통해 고소득 외국인에게 과세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신고 의무를 강화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비자 체류자에 대한 감시는 더욱 엄격해졌다. 인도네시아는 무비자 체류 중 외화 송금이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 자동으로 세무 조사 대상으로 분류되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다. 멕시코, 필리핀, 조지아 등도 디지털 노마드의 고정 체류를 감지할 수 있도록 출입국 관리 시스템과 조세 정보를 통합하고 있다.

이는 결국 각국이 무비자 제도를 관광 목적 외에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비자 없이 체류하며 소득을 창출하는 디지털 노마드는 세무상 ‘편법 체류자’로 간주될 수 있으며,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조세 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된다. 장기적으로는 무비자 체류 시에도 최소한의 세무신고 의무가 부과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미 몇몇 국가는 이러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무비자 체류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실무적 대응 전략 6가지


디지털 노마드가 무비자 체류 중에도 세금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각 체류 국가의 세법상 거주자 요건을 미리 조사하고, 183일을 넘지 않도록 철저히 체류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
둘째, 반복적인 체류가 발생할 경우, 해당 국가에 비자 체계를 통한 합법적 체류를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디지털 노마드 비자’나 ‘원격 근무자 비자’ 제도가 있는 국가로의 이동이 바람직하다.
셋째, 클라이언트 계약서에는 업무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Remote Work’ 혹은 ‘Global Service’ 등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해 소득 발생지 논란을 줄여야 한다.
넷째, 외화 수입은 본국 또는 조세 조약이 체결된 국가의 계좌를 활용하고, 체류국의 금융기관에 직접 송금되는 구조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거주국 국세청으로부터 ‘거주자 증명서’를 발급받아 이중과세 방지를 위한 DTA 적용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여섯째,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지속되는 경우, 법인을 설립하거나 세법상 효율이 높은 국가로 ‘세무 거주 이전(Tax Residency Migration)’을 고려하는 것도 장기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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